지능 이후의 희소성
AI가 모든 것을 더 쉽게 만드는 시대에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지능이 싸지면 무엇이 비싸질까요
요즘 AGI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결국 비슷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AI가 언제 인간보다 똑똑해질까요. 올해일까요, 내년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까요.
그런데 저는 이 질문이 점점 덜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AGI라는 말의 기준부터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벤치마크에서 인간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실제 회사에서 며칠짜리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길 수 있는 것도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수학 문제를 잘 풀고 코드를 잘 작성하는 AI와, 애매한 요구사항을 스스로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질문하고 여러 도구를 오가면서 실수를 수정해 끝까지 결과를 만드는 AI 사이에는 아직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글에서도 이 둘을 벤치마크상의 능력과 현실 업무에서의 능력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AGI가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 맞히는 것보다 저는 다른 질문을 먼저 해보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만약 인간 전문가 수준의 지능을 아주 싸게,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면 경제에서는 무엇이 비싸질까요.
이 질문에서 출발하면 AI 이후의 개인 전략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지능은 지금까지 꽤 비싼 생산요소였습니다
전문직의 몸값이 높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좋은 판단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의 시간이 희소하다는 점입니다.
좋은 개발자 한 명을 더 쓰려면 채용해야 합니다. 좋은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려면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뛰어난 디자이너와 연구자의 하루도 24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숙련도를 그대로 복사해서 100명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능은 오랫동안 비싼 생산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어떤 업무를 인간 전문가에 가깝게 수행하는 디지털 에이전트를 필요할 때 하나 더 실행할 수 있다면, 이것은 단순히 업무 속도가 빨라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적 노동의 공급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개발자 한 명을 더 고용하는 것과 개발 에이전트 하나를 더 실행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다른 일입니다. 전자에는 채용과 급여, 교육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후자에는 점점 더 연산비용과 소프트웨어 비용만 남습니다.
전문지식과 인지능력이 조금씩 복제 가능한 생산요소에 가까워지는 셈입니다.
과거에도 자동화는 계속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계가 기존의 일을 대신하면 인간은 다른 일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해도 새로운 직업은 또 생긴다는 이야기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기계가 주로 특정 작업을 자동화했다면, 충분히 범용적인 AI는 새로 생긴 일도 다시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A라는 일을 기계에 넘기고 B라는 일로 옮겼는데, AI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B를 배우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문제는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지를 맞히는 일보다 인간의 인지능력 자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희소한 생산요소로 남을 것인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능이 싸지면 병목은 다른 곳으로 움직입니다
경제에서는 대개 가장 부족한 것이 비쌉니다.
제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 지능, 자본, 유통, 신뢰, 물리적인 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지능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좋은 개발자와 디자이너, 연구자와 전략가를 찾는 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능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 병목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움직입니다.
코드를 만드는 것이 쉬워지면 코드 자체는 예전만큼 희소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면 디자인 시안 하나의 희소성도 떨어집니다. 글과 영상과 광고를 몇 분 안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전과 같은 가격을 받기는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여전히 쉽게 늘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관심은 하루 24시간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한 도시의 좋은 입지도 복제할 수 없습니다. 어떤 회사와 10년 동안 쌓은 거래관계를 버튼 하나로 복사할 수도 없습니다.
특정 생산자의 올해 생산량도 한정되어 있고, 이미 체결된 장기계약이나 운영권, 라이선스 역시 AI가 생성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신뢰도 모델의 성능이 좋아졌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능이 풍부해지면, 지능이 아닌 것이 비싸집니다.
이 문장을 받아들이고 나면 AI 시대에 무엇을 쌓아야 하는지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드는 능력보다 도달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콘텐츠만 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 한 편, 이미지 한 장,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까지 같은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물은 넘쳐나는데 사람의 시간은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부족해지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심입니다.
이때부터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만큼 “누구에게 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집니다.
조회수가 있는 것과 다시 연락할 수 있는 고객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SNS 팔로어가 많은 것과 고객의 이메일, 연락처, 구매이력과 실제 거래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다릅니다.
플랫폼에서 얻은 노출은 알고리즘이 바뀌는 순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면 직접 맺은 고객관계는 상대적으로 오래 남습니다.
관계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한 번 본 사람보다 팔로어가 낫고, 팔로어보다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구독자가 낫습니다. 구독자보다 고객이 강하고, 고객보다 반복해서 구매하는 고객이 강합니다.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장기간 계약을 맺은 고객일 것입니다.
결국 AI가 생산을 싸게 만들수록 유통과 관계는 오히려 비싸질 수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도 영원한 경쟁우위는 아닐 겁니다
지금은 분명 특이한 시기입니다.
AI의 능력은 빠르게 좋아졌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여전히 AI 이전의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사람을 채용하고,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부서별로 업무를 넘겨가며 일합니다.
기술이 변하는 속도보다 조직이 변하는 속도가 느립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AI를 실제 업무에 깊게 사용하는 개인이나 작은 조직이 상당한 생산성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이라면 여러 사람이 해야 했던 일을 한 사람이 처리하는 사례도 이제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는 점입니다.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능력도, 여러 에이전트를 조합하는 능력도, 가장 적절한 모델과 도구를 고르는 능력도 결국 AI가 점점 더 잘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AI를 남들보다 잘 쓰는 데서 생기는 이익은 분명 큽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구적인 해자라기보다 일종의 차익거래 구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만이 아닙니다.
그 생산성 차익을 무엇으로 바꾸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AI를 남보다 먼저 잘 사용해서 번 돈과 시간을 고객관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고객의 실제 업무 안에 들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데이터와 업무기록, 평가기준과 절차가 쌓입니다. 그다음에는 그것을 계약과 브랜드, 네트워크, 지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원래 글에서 말한 AI arbitrage에서 integration으로, 다시 ownership으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AI를 잘 쓰는 능력 자체를 지키려고 하기보다, 그 능력이 아직 희소한 동안 AI가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성이 쉬워질수록 검증은 더 중요해집니다
AI 이야기를 할 때는 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그런데 생성비용이 계속 낮아지면 오히려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코드는 몇 초 만에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실제 서비스에서 사고를 내지 않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보고서를 20개 만들 수 있어도 어느 숫자가 틀렸는지는 검증해야 합니다. 마케팅 전략을 100개 생성할 수 있어도 결국 어느 전략이 실제 매출을 만들었는지는 현실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만드는 비용과 검증하는 비용이 반드시 같이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생성물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평가와 감사, 모니터링, 출처 확인, 결과 측정 같은 일의 상대적인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잘한다”는 것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도 비슷합니다.
AI가 만들어낸 글 100만 개는 별로 희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제안을 했고, 실제로 무엇을 실행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변했으며, 고객은 그것을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연결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생성된 정보가 아니라 현실에 부딪힌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생성했는지만큼이나 무엇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커리어를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대차대조표로 본다면
여기까지 생각하면 커리어를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집니다.
기존의 전형적인 경로는 좋은 기술을 배우고, 경력을 만들고,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노동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지식과 숙련이 희소한 시대에는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식과 인지능력이 빠르게 복제되기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큼 “무엇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동산 AI가 나온다고 해서 특정 토지의 소유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경영 AI가 있어도 어느 회사의 지분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광고 AI가 있어도 인간의 관심시간은 늘어나지 않고, 최고의 요리 AI가 등장해도 좋은 식당의 좌석이나 특정 농장의 생산량이 무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능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희소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커리어를 연봉만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대차대조표처럼 볼 필요가 생깁니다.
내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고객이 얼마나 있는지,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매출이 있는지, 고객의 중요한 업무 과정 안에 얼마나 깊게 들어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 결과와 연결된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지, 공급자나 파트너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계약으로 확보한 권리가 있는지, 어떤 사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지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비싼 자산을 직접 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건물을 살 돈이 없다면 운영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장을 소유할 수 없다면 생산 슬롯을 계약할 수 있습니다. 공급망 전체를 가질 수 없다면 특정 물량의 우선구매권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희소한 것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에 일정한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결국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로 이동합니다
AGI 시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입니다.
당장의 생계와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필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한다면 질문을 한 번 더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AI 노동력이 지금보다 훨씬 싸진 세계에서 저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조금 더 극단적으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AI가 제가 하는 대부분의 일을 저보다 잘하게 된 뒤에도, AI가 만들어낸 경제적 가치의 일부가 계속 제게 돌아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고객일 수도 있습니다. 계약일 수도 있습니다.
고객의 업무 흐름 안에 들어가 있는 시스템일 수도 있고, 현실의 결과와 연결된 데이터일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와 네트워크, 운영권, 공급권, 지분, 물리적인 자원에 대한 접근권일 수도 있습니다.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모두 희소한 것에 대한 권리입니다.
AI를 이용해 혼자서 10명처럼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0명처럼 일하더라도 매일 만들어낸 것이 그날 사라진다면 결국 다음 날 다시 노동을 팔아야 합니다.
조금 더 좋은 상태는 다릅니다.
AI가 일을 하고, 그 결과가 검증되고, 고객이 돈을 내고, 고객관계와 데이터와 계약이 쌓이고, 그 전체 시스템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남는 상태입니다. 원래 글에서 말한 최종적인 상태 역시 여기에 가깝습니다.
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AI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가 2배 좋아질 때 내가 가진 기술의 시장가격이 얼마나 떨어질지를 걱정하는 대신, 내가 권리를 가진 시스템의 생산성이 얼마나 올라갈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AGI 이후 개인 전략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보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요?”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다음 질문에 더 가깝습니다.
지능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 세계에서, 저는 무엇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요.